〈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 SF소설집
작가 김초엽은 본래 생화학 석사과정을 밟고 바이오센서를 연구하던 과학도이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각각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며 데뷔했다.
본 책은 두 수상작을 포함한,
총 7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나는 그 중 첫번째 이야기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고
감상을 써 봤다
1편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줄거리]
데이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지구 밖에 존재하며,
차별, 갈등, 고난, 전쟁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이 '마을'에서는 18살이 되면 성년식으로 '순례'를 하게 된다.
'순례'란 이동선을(로켓같은 비행수단인듯) 타고 지구로 떠난 후, 1년 후에 '마을'로 귀환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떠난 자들의 절반에 못미치는 수만이 귀환자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개의치 않아하며 항상 꽃다발을 준비하며 그들을 기쁘게 맞아주었다.
이야기의 화자인 소녀, 데이지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책 속의 지구인들 이야기와 달리, 우리 '마을'은 왜 역사도 짧고 고통이라곤 없을까?" "왜 순례자들 중 일부는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단서를 찾기 위해 금서구역에 들어간 데이지.
'마을'이 만들어지게 된 비밀을 알게 되며, 지구로 떠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데이지는 금서구역에서 '마을'의 역사적 인물인 '올리브'가 남긴 기록을 보게 된다.
소설은, 지구로 떠나는 데이지의 편지 속 이야기로 시작한다. 근데 중간부터 데이지가 본 올리브의 기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액자의 액자식 구성?)
기록에 의하면, 올리브는 날 때부터 얼굴에 큰 흉터를 지닌 소녀였다. '마을'을 떠나 지구로 간 올리브는 난생 처음으로 외모로 인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흉터를 지녔던 그녀의 어머니 '릴리'의 존재에 대해 파헤치던 중,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된다.
릴리 다우드나는 지구인으로, 최고의 생명공학기술을 지닌 과학자였다.
릴리는 자신의 얼굴의 흉터를 '결함'으로 여겼다. 그래서 선의를 베풀고자.. 자신의 기술을 이용해 '결함'이 없는 완벽한 아이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 이렇게 만들어진 완벽한 '개조인간'들은 '비개조인간'들을 차별하기 시작했고, 완벽한 디스토피아가 탄생하고 만 것이다.
40대의 중년이 된 릴리는 자신의 손에서 탄생한 지옥에 대해 후회한다.
릴리는 자신을 닮은 아기 '올리브'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랑하는 '올리브'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창조해낸다.
'마을'은 그렇게 탄생한, 차별과 혐오, 부정적 감정을 배제한 신인류로 구성된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올리브는 '마을'의 금서구역에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는 지구로 돌아가 살다가, 생을 마친다.
'마을'의 순례자 풍습은 사실, 올리브가 만든 것으로,
반드시 한번은 이 세계를 떠나 지구에 남을지 귀환할지 선택하도록 한 것이었다.
[나의 감상]
'마을'이 사실은 릴리가 딸을 위해 창조한 유토피아 라는 걸 알았을 때,
게임 레이튼교수와 이상한 마을(2007년 작)을 떠올렸다.
(책을 워낙 안읽으니까 비교대상으로 기껏 생각해낸 게 어릴 때 한 닌텐도게임밖에 없음...)
유산상속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이상한 마을에 도착한 레이튼교수와 조수 루크.
수수께끼를 여차저차 풀던 끝에..
이 마을사람들 모두가 정교하게 만들어진 (말하는)인형이었고, 한 남자가 자신과 부인이 죽은 후 외톨이가 될 딸아이를 위해 창조된 마을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 의뢰는 유산과 딸을 맡길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을 찾기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비밀을 알아낸 사람이라면, 진정 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서...)
두 작품 다, 딸을 위해 무려 세계관을 구축해버리는 미친 과보호 부모임엔 분명하다.
그리고 이 완벽하다고 여겨지던 '유토피아'를 주인공이 벗어남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라는 점도 비슷하다.
레이튼교수와 이상한마을에서는 플로라(딸 이름)가 웃을 때만 나타나는 사과모양 반점으로 단서를 찾아 유산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다. 유산을 손에 넣으면 마을사람들(인형)의 작동이 멈추는 시스템으로, 플로라는 결국 이 가짜마을을 떠나게 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도 올리브는 '마을'을 떠난다. 자신이 사랑하는 지구인 '델피'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가 만든 디스토피아를 바꾸기위해,
체제에 저항하는 삶을 택한다.
데이지는 "정말로 완벽한 세계라면 왜 순례자들이 이곳을 떠날까?" 라는 고민 끝에, 답을 알게 된다.
'마을'의 사람들은 프로그래밍된듯 서로에게 성애적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서로가 같은 인공자궁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형제애만 느끼는 걸수도)
그러나 지구로 떠난 순례자들은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순례자들은 그들의 연인이 맞서는 세계를 본다.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세계를 바꾸기위해 양극화와 분리주의에 저항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때 나는 "그냥 둘이 같이 마을로 가서 살면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그런 편한 소리가 아닌, 실체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거 같다.
진짜 유토피아는 신체적 '결함'이 완벽히 사라진 세상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 모아놓은 세상도 아니라는 것.
실제 세상에는 장애인을 비롯해,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과 명확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이 특징이 극복하고 교정되어야할 '결함'으로 인식되는 세상을 살고있다.
어쩌면 그런 불완전한 세상일지라도, 우리가 더불어 함께 고민하고 나아가는 그 움직임으로부터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유토피아로 향하는 길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요새 화두에 오르는 장애인단체의 이동권보장 시위가 떠올랐다. 바쁜 출근시간대에 열차운행이 늦어져서 화가 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이 벼슬이냐"고 한다.
(애초에 사람이 피켓을 들고 지하철에 타고 내리는 것 뿐인데,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부터가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방증아닌가?)
그리고 서울교통공사와 일부 정치인들은 그러한 장애인/비장애인 갈라치기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평화적인 시위"를 장애인단체가 안 해봤을까? 그들이 이동권보장을 외친지는 20년이 넘었지만, 저상버스 도입률은 여태 27%밖에 되지않는다.
비장애인들은 지하철연착으로 어쩌다 하루이틀 불편을 겪지만, 장애인들에겐 숨쉬듯 당연하게 험난한 여정이 지속된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구조적차별 속에서 주어진 특권이라는 것부터 인식해야 할 것이다.
뭐라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후원계좌 홍보합니다
국민은행 009901-04-01715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후원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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